6월 9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
예수님께서는 행복 선언으로 인간의 부족함을 드러내신 뒤, 곧 바로 신앙인
의 정체성을 한 번에 규정하십니다. 신앙인은 가난해도, 부족해도 이미 “세
상의 소금”(마태 5.13)이고 “세상의 빛”(5.14)입니다. 이 말씀은 격려이면서 동
시에 두려운 선언입니다. 소금과 빛은 스스로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.
언제나 다른 이를 향합니다. 소금은 녹아 사라지며 맛을 내고, 빛은 어둠을
밝혀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합니다.
소금은 고대 세계에서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습니다. 정화하고, 보존하
며, 제물과 함께 바쳐졌고,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. 그런
소금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고 자연의 질서를
거스르는 일입니다. 마태오 복음사가는 바로 이 ‘부자연스러움’을 통하여 경
고합니다. 제자들이 행복 선언에서 드러난 삶의 방식, 곧 가난함, 애통함, 온
유함, 의로움이 대한 갈망을 잃어버릴 때, 그들은 소금이지만 소금이 아닌
존재가 되어 버립니다. 이 쓸모없은 도덕적 실패라기보다, 자기 본성과 정
체성을 배반한 결과입니다.
빛 또한 마찬가지입니다. 등불을 켜서 함지 속에 두는 행위는 제맛을 잃
은 소금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. 예수님께서는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
는 것이 “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”(5.16)를 찬양하게 하려는 일이라고 말씀
하십니다. 이것은 마태오 복음서 6장이 말하는 위선적인 드러냄(보이기 위한
자선, 기도, 단식)과는 결이 다릅니다. 등경 위의 빛은 요란하지 않습니다. 조
용히 그러나 끝내 숨겨지지 않아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.
우리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. 이미 소금과 빛이 되었
으니 무엇이 ‘되고자 하는 마음’보다, ‘무엇을 위한 마음’을 지녀야 할 사람입
니다. 세상의 소금이자 빛인, 자연스러운 오늘의 ‘나로서’ 살아갑시다. ⊕
(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)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