6월 5일 금요일 보니파시우 주교 선교자 기념일
어제 복음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. 성
전은 딱딱한 돌과 제도의 공간이지만, 아울러 군중의 숨결이, 그들의 희
망과 믿음이 출렁이는 광장이기도 합니다.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신학적
질문을 던지십니다. ‘율법 학자들이 말하는 메시아, 곧 다윗의 자손’이라
는 통념을 출발점으로 삼으시면서도, 그것을 해체하시고자 물으십니다.
메시아‘는 단순히 ’기름부음받은 이‘라는 종교적 표지가 아니라, 다윗
의 약속에(2사무 7장 참조) 뿌리를 둔 정치적 종말론적 희망이 응축된 이름
이었습니다. 유다 전통은 그가 왕조를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였고, 예수
님께서는 이 전통을 부정하시지 않습니다. 다만 시편110(109) 1절을 인
용하시며 물으십니다. “성령의 도움으로”다윗이 메시아를 “내 주님”(마르
12.36)이라 부른다면, 어떻게 메시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일 수 있느냐는
것입니다. 아버지가 아들을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상식을 바탕으로
다시 묻고 계시는 것이지요. 그러므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을 넘어, 다윗
보다 위에 놓아야 합니다.
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이 물음으로 ‘다윗의 자손’이라는 칭호를
새로이 보게 하며, 유다 전통에만 머물러 메시아를 기다리고 희망하는 무
뎌진 마음에 경종을 울립니다. 마르코 복음서는 우리에게도 물음을 남깁
니다. 우리에게 익숙해진 예수님의 이미지 또한 너무 작지만 않은지요. 인
간의 생각과 습관과 상식 안에서 그저 우리의 기대와 욕구를 채워 주시는
존재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. 예수님께서는 ‘우리’를 넘어 ‘주님’
으로 다가오십니다.
오늘 복음의 군중은 성전의 돌기둥 사이에서, 한 칭호가 무너지고 더
큰 이름이 열리고 있음에 기뻐합니다. 메시아를 기다리는 우리 또한 날마
다 낡고 굳어진 것을 비워 내고 내려놓아야 합니다. 더 깊고 넓은 신앙의
고백은 우리의 좁고 편협한 언어를 허무는 데서 시작합니다. ⊕
(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)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