6월 8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
마태오 복음서의 산상 설교는 군중과 제자 모두를 향한, 이스라엘 전체를
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시작하고 또한 끝맺습니다(마태 4.25; 7.28-29 참
조). 산상 설교는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, 보편적 가
르침입니다. 먹고사는 문제, 울고 웃는 문제, 그리하여 이 삶을 그토록 모질
게도 살아내야 하는 까닭을 담고 있습니다.
행복 선언은 현재 상태를 미화하거나 치장하지 않습니다. 오히려 부족
함, 슬픔, 무력함, 굶주림이라는 인간의 낮은 자리를 들추어냅니다. “마음
이 가난한 사람들”(5.3)은 하느님 나라를 억지로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, 부
족함을 견디며 하느님의 개입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. 이 가난은 유다의
쿰란 공동체가 말하던 ‘영 안에서 낮아진 이들’과도 닿아 있습니다. 그들은
유배의 고통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 내며, 자신의 힘 없음이 오히려 하느님
을 향한 기회이자 초대가 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.
행복 선언이 그리는 현실의 ‘슬픔’은 (5.4 참조) 역사 속 이스라엘이 겪은
상실과 폐허가 된 시온을 배경으로 합니다. 그렇기에 이 선언은 현실이 팍
팍하여 가난과 힘겨움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을 향합니다. 힘
이 없기에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약하고 부드럽기에 ‘온
유’합니다(5.5 참조). ‘의로움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’은(5.6 참조) 단순한 윤리
적 욕망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정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현실을 고통스럽
게 인식하는 것입니다.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며
평화를 이루는 삶을(5.7-9 참조) 꿋꿋이 살아 내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
하십니다.
결국 박해받는 이들에게(5.10 참조) 약속된 하늘 나라는, 세상이 짓밟은
자리에서 하느님께서 마지막으로 뒤집어 주실 새로운 질서가 됩니다. 그 질
서가 가리키는 행복은 현실의 찬란한 성공이 아니라, 상처의 한가운데도
끝내 포기하지 않는 존재에서 주어지는 ‘조용한 회복’입니다. 하느님께서는
당신의 나라를 기어이 회복시키실 것입니다. 우리는 그 ‘기어이’를 붙들고
살아 내는 신앙인입니다. ⊕
(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)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