6월 6일 연중 제9간 토요일
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나열합니다. 성전에서 가
르치시는 예수님의 언어는 따뜻하고 정겨운 교훈이 아니라 진실을 찾는 논
쟁의 칼날이 되고, 그 칼날은 율법 학자들을 겨눕니다. 그들에게 신앙은
하느님을 향한 길이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향한 우월과 교만의 무대가 됩
니다. ‘기도’조차도 제 위신을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장식으로 삼으며, 그리
스 말 표현 에 따르면 과부들의 ‘집마저 삼켜는’데 주저하지 않습니다. 당시
관행으로 미루어 보건데, 사회적으로 취약한 과부들을 위한답시고 재산
을 맡아 주면서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, 성전 제의를 위하여 봉헌
하라고 권하면서 재산을 빼앗은 것으로 보입니다. 분명한 것은 그들의 긴
기도는 제 이익을 위한 구실이며,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더욱 부겁게
불러온다는 것입니다.
이 경고 뒤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곧 바로 장면을 바꿉니다. 예수님께서
는 성전의 헌금함 맞은 쪽에서 사람들이 돈을 넣는 모습을 바라보십니다.
부자들의 많은 돈이 쏟아지는 가운데, 한 가난한 과부가 가장 작은 동전
두 닢을 넣습니다. 예수님께서는 선언합니다. 하느님의 눈에는 액수의
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그 가치를 결정하나고요.
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 남은 것을 바쳤으나, 과부는 부족함 속에서
‘자기 삶 전체’를 바쳤습니다. 돌로 된 성전은 거대한 금액과 은을 삼키지만,
하느님께서는 그 작은 동전 두 닢으로 한 사람의 온 생애를 받아들이십니
다. 우리는 묻게 됩니다. 나는 지금 하느님께 무엇을 ‘드리는가’, 또는 무엇
을 ‘내맡기고’ 있는가. 또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. 교회는 신자들이 가진
돈과 시간과 노력, 봉사를 바라는가, 아니면 그들의 온전한 삶이 하느님께
봉헌되기를 바라는가. ⊕
(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)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