6월 1일 월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
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. 그 대
상은 군중이 아니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입니다. 한 사람
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과 망대까지 마련합니다.
이 포도밭은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한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(이사 5.2 참
조).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기시고 떠나신다는 설
정은,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의 시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. 하느님
의 침묵은 인간이 자유롭게 충실하거나 자유롭게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을
열어 놓습니다.
때가 되자 주인은 종을 보내 열매를 요구합니다. 그러나 소작인들은 종
을 때리고 모욕하며, 죽이기까지 합니다. 이는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예언
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. 마침내 주인은 “사랑하는 아
들”(마르 12.6)을 보냅니다. 이 아들은 단순한 사자가 아니라 주인의 마음이
며, 하느님의 ‘사랑하는 아들’ 예수님을 가리킵니다. 예수님께서는 예언자
들이 걸었던 고통의 길 한가운데에서 함께하십니다.
그러나 소작인들은 그를 상속자로 여겨 말합니다. “저자가 상속자다.
자, 저자를 죽여 버리자”(12.7).그들의 말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을 죽이려
하였던 요셉의 형제들이 한 말과 비슷합니다(37.20 참조). 질투는 같은 말을
되풀이하게 합니다. 소작인들은 결국 ‘사랑하는 아들’마저 죽이고는 포도밭
밖으로 던져 버립니다. 이는 예수님께서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사건을
미리 보여 줍니다. 결국 주인은 그들을 심판하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
맡길 것입니다. 포도밭은 파괴되지 않습니다. 하느님의 나라는 사라지지 않
고, 그곳을 맡은 이들이 바뀔 뿐입니다.
“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,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”(마르
12.20). 인간의 교만과 욕심으로 내치고 버린 존재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
안에서 중심이 됩니다. 십자가는 버림받음이지만, 그 버림받은 자리에서
부활이 이루어집니다. “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,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
네”(12.11). 그 놀라움은 눈부신 승리라기보다, 상처 난 자리에서 조용히 피
어나는 생명처럼 우리 안에 흔적으로 남습니다. ⊕
(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 필사)

